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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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지형이 바뀐다② 그날 밤, 팽목항

김용진 프로필 사진 김용진 2016년 04월 16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대표

2014년 4월 16일 밤, 진도 팽목항 부두. 행정선 한 척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태우고 침몰 현장으로 떠났다. 지상파 촬영기자 1명이 풀(pool) 기자로 동승했다. 칠흑 같은 밤바다, 전조등에 비친 물결은 잔잔했다.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 남편이 거대한 여객선에 갇혀 시시각각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따금 애끊는 흐느낌이 이어지다 곧바로 배 기관 소리에 파묻히곤 했다.


밤하늘엔 간헐적으로 조명탄이 터졌다. 멀리 어둠 속에서 뒤집힌 뱃머리가 어슴푸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비스듬히 쓰러진 채 하루 종일 모든 TV 화면을 채웠던 세월호가 어느샌가 검푸른 구상선수 부분만 남기고 물속에 잠겨있었다. 절망과 공포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힘없이 들려왔다. “저것만 남았어...” 좀 더 다가가자 세월호의 윤곽과 주변 모습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 남자의 절규가 터져나왔다. “아무도 없잖아. 누가 수색한다는 거야. 누가 구조하는 거야”, “용접을 해서 뚫고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아무도 없잖아”


세월호 침몰 현장에선 거짓말처럼 아무런 구조작업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여자들은 몸부림치며 울음을 터트렸다. 누군가가 동승한 기자에게 당부했다.




잘 찍어 둬요. 이거 봐요. 도대체 여기 누가 있어요.



방송사 촬영기자는 현장 상황과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고스란히 찍었다. 행정선 옆으로 해경 단정 한 척이 지나갔다. 가족들은 해경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사람이 살아있어요. 카톡이 왔다고요. 제발 구해줘요." 그러나 해경 배는 무심하게 이들을 지나쳤다.


침몰 현장에서 아무런 구조작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가족들은 배를 돌려 주변에 정박중인 목포해경 지휘함 3009함으로 다가갔다. 해경 승선원들이 드문드문 갑판에 나와 가족들이 탄 배 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휘함을 향해 제발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카톡이 왔다고, 빨리 구조해 달라고 애타게 호소했다. 그러나 지휘함에서는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이 한참을 더 울부짖자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새벽 1시쯤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1분 1초가 급한 가족들을 더욱 애타게 만들었다. “뭐라고 지금 시간이 어딨어. 지금 시간이 문제야”, “너희 가족이 빠져도 그렇게 말할 거야”, “힘든 건 알지만 지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급기야 한 남자가 배 난간을 넘어 바다에 뛰어내리려고 했다. “내가 빠져도 그렇게 한번 지켜봐” 사람들이 급히 달려들어 그를 말렸다.


한참 지나 세월호 주변으로 해경 단정과 고무보트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물결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주변에는 소용돌이까지 쳤다. 육안으로도 잠수 작업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해경은 17일 새벽 1시를 정조 시점으로 파악하고 수중구조 작업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조류 시간대를 오판한 것이다. 해경 배들은 하릴없이 세월호 주변만 빙빙 돌았다. 바다가 고요할 때는 두 손 놓고 있다가 조류가 강해지자 부산을 떠는 구조 당국의 모습에 실종자 가족들은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침몰 현장 상황과 가족들의 절규는 지상파 풀 촬영기자에 의해 가감 없이 기록됐다. 세월호 침몰 이후 사고 해역을 찾은 가족들과 구조 현장을 최초로 촬영한 이 20여 분 분량의 영상은 가족들의 동의 하에 지상파 3사에 모두 제공됐다. ‘세월호 탑승자 전원 구조’ 등의 오보로 언론에 대한 불신은 이미 극에 달한 상황이었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그래도 한 번만 더 방송을 믿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침몰 현장의 구조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었고, 어떻게 하든 이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4월 17일 새벽 6시, 각 방송사 아침뉴스는 일제히 세월호 참사 소식으로 시작됐다. KBS, MBC, SBS 모두 이 풀 영상을 사용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기대는 산산히 깨졌다. 밤새 행정선을 타고 사고 현장을 둘러봤던 가족들의 목소리는 아침 뉴스에 단 1초도 나오지 않았다. 지상파 뉴스들은 이 영상에서 캄캄한 밤하늘에 조명탄이 터지고 해경 단정과 고무보트가 사고 해역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장면들만 뽑아내 세월호 참사 속보의 밑그림으로 사용했다. 방송사들의 아침 리포트만 보면 구조당국이 밤새 혼신의 구조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이 풀 영상을 사용한 지상파 3사 보도기사 중 일부다.



KBS 4.17 아침 6시 뉴스

밤사이 시도된 수중 탐색은 거센 물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대신 고무 보트와 함정 등을 이용한 해상 수색 작업은 밤새 계속됐습니다.



MBC 4.17 아침 6시 뉴스

천 톤과 5백 톤, 3백 톤급 경비정 등 3척과 방제정 등 모두 4척이 투입됐고 122구조대원 9명도 현장에 급파돼 해상 수색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해군은 해난구조대와 특수전 전단 구조대와 함정을 사고현장에 급파하는 등 사고 수습 지원에 총력을 쏟고 있습니다.



SBS 4.17 아침 6시 뉴스

해경은 조류가 다시 멈추는 오전 7시쯤부터 다시 수중 수색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해경은 또 조명탄을 터뜨리면서 밤새 주변 바다도 수색했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구조 현장의 실제 모습과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해달라고 풀 기자를 배에 태웠고, 영상을 방송사에 제공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배에 탔던 가족들의 모습과 그들의 목소리는 빼버렸다. 이 풀 영상은 주류 방송사에만 제공됐기 때문에 뉴스타파는 이 영상의 존재조차 처음에는 몰랐다.


뉴스타파 제작진은 한참 뒤 세월호 참사 100일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가족대책위에서 받아 온 이 영상을 보게됐다. 결국 세월호 참사 당일 밤의 현장 영상은 촬영된 지 100일 만에야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4.16기록단이 공동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를 통해 온전하게 방송될 수 있었다.


4월 16일 오전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대다수 주류 언론은 세월호 탑승객 ‘전원 구조’라는 사상 최악의 오보를 냈다. 그럼에도 후안무치한 언론들은 아무런 반성 없이 그날 내내 정부의 발표만 그대로 받아쓰며 마치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국민을 기만했다. 마침내 그날 밤, 국민에게 구조 현장의 진상을 그대로 알려 과오를 씻을 기회가 왔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풀 기자가 현장을 목격하고, 촬영한 20분 분량의 영상을 보고도 구조의 실상을,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배제했다. 4월 16일, 이렇게 한국 언론은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기자들은 기레기로 불리기 시작했다.


주류 매체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세월호 참사 현장 상황이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뉴스타파 같은 독립매체들이 진도와 팽목항에서 정부의 재난 대응 실태와 실종자 가족들의 이야기 등을 가감 없이 전하면서부터다. 뉴스타파가 4월 17일 진도 현장 상황을 담아 보도한 세월호 리포트는 유튜브에서만 무려 백만 명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뉴스타파’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뉴스타파를 검색어로 넣은 어뷰징 기사까지 무더기로 쏟아질 정도였다.


소셜 빅데이터 분석회사인 스토리닷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 동안 SNS 빅데이터를 분석해 집계한 세월호 참사 연관어 미디어 순위를 보면 뉴스타파 언급량이 6만6천여 건으로 JTBC와 KBS, MBC, 외신 등에 이어 다섯 번째인 것으로 나타났다. SBS는 60,370건으로 뉴스타파에 이어 6위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오보와 보도 간부들의 실언 때문에 SNS상에서 주로 부정적으로 언급됐던 KBS와 MBC를 제외하면 뉴스타파는 적어도 SNS상에서는 JTBC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세월호와 더불어 언급된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국가적 재난 국면에서 신생 비영리 독립언론이 SBS뿐만 아니라 국가기간 통신사, 24시간 뉴스채널 등의 주류 매체보다 더 많이 거론됐다는 것은 한국의 미디어 지형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3월 18일 열린 제28회 한국PD대상 시상식. TV시사다큐부문 작품상이 뉴스타파의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참혹한 세월, 국가의 거짓말’ 제작진에게 돌아갔다. TV시사다큐부문상을 지상파 소속이 아닌 제작진이 받은 것은 이 상이 생기고 처음이었다. 더구나 이 상은 지상파 위주의 PD협회 소속 현역 프로듀서들이 비밀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뉴스타파 다큐가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의미 있는 자료를 많이 발굴해 만든 수작이긴 했지만, 그것이 수상의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2015년 한 해 동안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국가적 문제에 대해 진중하게 천착한 TV시사다큐가 별로 없었다는 것도 이 상이 뉴스타파 다큐에 돌아간 큰 요인 중 하나였다. 바꿔 말하면 중요한 사회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방송 채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업성과 정파성에 매몰된 기존 주류 매체가 이미 감당할 수 없게 된 어떤 역할을 새로운 독립언론이 맡을 수밖에 없는, 저널리즘 생태계의 본질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언론 몇몇이 이 시대가 한국의 언론기관에 요구하는 사명을 다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혀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늘은 2016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다. 참사 원인은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고, 세월호 가족들은 2년째 광장과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주류매체에서 단순한 추모 소식 이외의 의미 있는 보도나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저널리즘 정신을 회복하기 바라는 의미에서 2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 각 언론사 기자들이 쏟아냈던 처절한 반성의 언어를 아래에 기록으로 남겨둔다.



OOO 방송 기자들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빠짐없이 충실하게 보도한 반면, 현장 상황은 누락하거나 왜곡했습니다. 결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축소됐고, 권력은 감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 됐습니다. 더구나 OOO는 이번 참사에서 보도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결과,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는가 하면, ‘구조인력 7백 명’ ‘함정 239척’ ‘최대 투입’ 등 실제 수색 상황과는 동떨어진 보도를 습관처럼 이어갔습니다.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겐 큰 혼란과 불신을 안겨줬으며, 긴급한 구조상황에서 혼선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이점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OOO 방송 기자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최악의 오보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스팟뉴스로 뜬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기사일 것입니다. 이 오보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이게 했고 전 국민으로부터 언론이 지탄의 대상이 되게 하는 첫 전주곡이었습니다. (...) ‘사실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 언론인이 자신의 사명을 잊고 왜곡된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직업윤리를 넘어 역사의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사죄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 있는 희생자들이시여 우리들을 절대 용서하지 마소서!



OOO 방송 기자들

소중한 수신료의 가치를 훼손했고, 저널리즘의 근본을 망가뜨렸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사죄드립니다.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뒤늦었지만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OOO 뉴스는 한 차례도 대통령을 비판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했습니다. 반면, 대통령을 홍보하는 뉴스는 과도하게 부각했습니다. 대통령 동정 보도는 9시 뉴스 20분 안에 방송한다는 참담한 원칙까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OOOO 기자들

본지의 부정확한 보도로 희생자 가족들과 독자 여러분께 혼선을 드린 적이 적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정확한 보도를 생명처럼 여겨야 할 언론으로서 수치스럽고 송구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 관련 칼럼 : 저널리즘 지형이 바뀐다① D-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