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대박치자고?

알파고-이세돌 사태를 이해하는 방식 (1)

지난 4/13 선거는 한국사회 앞날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최악을 막았다는 점에서 큰 다행이다. 이제 2008년 이래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서 미뤄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들을 제대로 시작할 때다. 해서 앞길은 여전히 멀고도 멀다.

선거전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알파고-이세돌 사태는—이건 흥미로운 기술 이벤트가 아니라 커다란 사태다—이런 개혁과제들과 근본적인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짚어보자.

알파고-이세돌 사태 바라보기

알파고-이세돌 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째는 기술 중심/산업 중심의 생각이다. 둘째는 인문학/사회학적 관점이다. 속되게 요약해보자면 기술/산업 중심의 시각은 ‘AI로 경제 살리기’ 정도일 것이고, 인문학/사회학의 시각은 ‘기계우위 시대 인간의 위상 짚어보기’ 정도가 된다.

먼저 기술/산업 중심의 관점은 정부가 대변한다. 가능성 있음직한 기술 또는 산업의 영역에서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틀을 짜는데 아주 유능한 곳이 한국의 정부다.

흔히 ‘K-알파고’라는 말로 요약되는 한국 정부의 관련 발표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허핑턴포스트 3/17. 허완)

  1.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현대자동차가 참여하는 민간연구소인 ‘지능정보기술 연구소’ 설립
  2. 이 연구소는 참여 기업들이 30억 원씩 출자하고 연구인력 50여 명으로 구성됨
  3. 연구소 설립/운영은 6개 기업이 담당하고 정부가 플래그십 프로젝트 등 핵심 연구개발(R&D) 연구비를 지원함
  4. 정부는 올해 1,388억원을 시작으로 5년간 1조 원의 예산을 투입함
  5. 정부는 민간에서 2조5000억 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

어디서 많이 보던 스타일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조국 근대화 스타일이다. ‘지능정보기술 연구소’라는 단어만 다른 것으로 바꾸면 이런 계획이나 보고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 다 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능정보기술 연구소’를 ‘3D 미디어 기술 연구소’로 바꿔 써보자. 1.XX 전자, XX 텔레콤 등등 민간연구소가 참여하는 ‘3D 미디어 기술 연구소’ 설립. 이어지는 2, 3, 4, 5 항목은 숫자 정도만 고치면 된다. 그럼 보고서는 통하게 되어 있다. 어디에도 써먹을 수 있는 만능의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매우 거친 표현이지만 ‘자, 돈 좀 벌어봅시다‘ 수준의 깊이 없는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

3D 사례의 반복?

기왕 3D 이름을 거론했으니 그 후일담 이야기를 해보자. 2009년 J. 카메론 감독의 3차원 영화 ‘아바타’가 전 세계 영화의 역대 흥행 기록을 세우는 돌풍을 일으켰고 그 돌풍은 엄청난 규모의 국제적 3D 붐을 일으켰다. 그 때 한국에서 벌어진 풍경 역시 호떡집에 불난 풍경 바로 그것이었다.

정부 주도하에 마포 상암동에 근사한 3D 미디어랩도 만들고 일산에 2천억 이상 들여 3D 제작/유통지원 센터도 만들었다. 비싼 외국산 3D 장비들도 속속 들여왔다. 오래전부터 3D 방송을 준비해오던 당시 정보통신부, 방송위 등은 지상파 방송 중심으로 온갖 시범사업을 전개하면서 정규방송도 시도했고,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역시 세계 최초라며 정규 3D 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불과 2~3년 후 3D 영화/TV 붐은 삽시간에 사그라졌다. 그럼 지금 이 3D 랩과 센터는 어떻게 됐을까? 거의 3D 영상장비 보관창고 신세가 되었다.

왜 이렇게 일이 진행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짚어볼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까닭은 3D를 문화의 관점이 아니라 기술과 산업의 시각에서 바라본 탓이다. 그건 좀 심하게 말하면 ‘그래, 아바타처럼 대박치고 우리도 3D로 돈 좀 벌어보자’라는 관점이다. 전문용어로 개발주의라 불리는 이 같은 관점은 경제성장이라는 구호가 온 나라를 휩쓸기 시작한 60년대부터 비롯되어 지금까지도 한국사회에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는 거의 불치병 수준의 사고방식이다.

3D와 AI는 다른 영역이지만 적어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런 점에서 개발주의적 한국형 AI는 슬픈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앞서 인용했던 허핑턴포스트 기사의 제목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한국형 알파고’ 대책을 마침내 정부가(?) 발표하다” 이다. 소위 ‘K-알파고’ 프로젝트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지 제목이 말해준다. 조선일보도 이렇게 썼다.

정부의 계획에 대한 기업과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정부가 주도할 경우 그간의 전례를 봤을 때 단기성과에 급급할 가능성이 있고, 정부가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 기업과 연구자들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래부, 인공지능 뜨니까 기업 모여라?…기업도 과학계도 ‘싸늘’(조선비즈 2016.3.15)

카이스트 재학생들도 그랬다 한다.

K-알파고 같은 근시안적 개발 말고, 진행 중인 연구들을 믿고 기다려달라…(중략)… 경제적 이윤추구에 매달리며 ‘그거 돈 되는 연구냐’ 같은 소리를 할 게 아니라 기초과학 연구, 기존 연구 지원 강화 등 기반을 닦는 게 중요하다.
“300억 들여 ‘K-알파고’ 만든다는 소린 마세요” “기초과학 꾸준히 지원을”(경향신문 2016.3.31)

AI 대박 한국?

문제는 무엇일까? 왜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일까? 앞서 개발주의라는 용어를 썼지만, 그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다. 개발주의란 두 가지 차원의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는 목표의 차원에서 경제성장, 둘은 목표수행 차원에서 중앙집중형 동원방식이다. 즉 개발주의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국가 중심의 동원체제 구축과 운용방식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개발’ 또는 ‘발전’이라는 용어는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의 신속한 달성과 확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진다. 짐작건대 이번 총선에서 그런 뜻의 ‘OO 발전’이란 구호는 후보자들이 가장 많이 동원한 공약 중 하나일 것이다.

곰곰 짚어보면 개발주의는 한국사회의 개인과 집단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 중 하나이다. 이는 지난 1960년대 이래 한국이 이룩한 엄청난 산업화의 핵심 이데올로기였고 조국 근대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등은 그 이데올로기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중앙/지방정부의 홍보와 언론,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고 증폭되어온 개발주의 성공신화는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 지금까지도 개인과 집단의 행태와 사고방식을 좌우하는 가장 큰 구호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주도하에 민간 기업들이 동원되는 틀을 만들고 ‘모두 모여 돈 좀 벌어보자’ 식으로 AI 기술에 접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의 신속한 달성과 확대 차원에서 준비되는 정보기술/산업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남 따라하기’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특히 고도의 지식을 축적한 기업이나 연구집단이 해당 영역의 구조적 권력으로 작용하는 정보기술 환경에서 남 따라하는 기업이나 연구집단은 하부 행위자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그럼 지금의 국면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앞의 KAIST 학생들이 이미 답을 내놓았다. “K-알파고 같은 근시안적 개발 말고, 진행 중인 연구들을 믿고 기다려달라”….. “경제적 이윤추구에 매달리며 ‘그거 돈 되는 연구냐’ 같은 소리를 할 게 아니라 기초과학 연구, 기존 연구 지원 강화 등 기반을 닦는 게 중요하다.”

정보지식 기술은 본래 수직적 명령체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소통체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미 전문화, 세분화가 심화되어 가고 있는 정보기술과 지식의 영역은 정부가 맡아 지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의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앞장서서 결정하고 따라오라 지휘하려 하지 말고, 기업과 학계, 연구소, 시민사회단체 등 전문가 집단들 간의 지식협력 네트워크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알파고-이세돌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메시지의 아주 작은 출발일 뿐이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2편 : 기계들의 시대로 가는 길 보기

  • 김동하

    단가적 성과 집착
    과도한 경쟁 유발
    재곰돈떼 시스템
    어디 이야기인가요 ? 한국 이공계와 지원정책(bk)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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