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들의 시대로 가는 길?

알파고-이세돌 사태를 이해하는 방식 (2)

… 나는 처음으로 경험한 즐거움에 몸부림치면서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컴퓨터는 자신의 즐거움 추구를 우선하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2016년 일본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썼다는-문학상 심사를 통과한- 소설의 마지막 단락.(관련 기사)

터미네이터가 아들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나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 기계는 아들을 구하라는 명령을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완수할 것이다. 다른 인간들처럼 아들을 버리지도, 해치지도, 술에 취해 때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들에게 소리치지도 않고, 바빠서 함께 놀아줄 시간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기계는 지금까지 봤던 그 누구보다 가장 반듯한 정신을 가진 존재다. 미쳐 돌아가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제정신을 가진 기계에게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선택 아니겠는가.

1991년 J. 카메론. 터미네이터 2 중에서.

기계 우위의 시대?

지난 4월 19일 뉴스타파 칼럼에서 필자는 ‘이룩하자 경제성장’ 식으로 인공지능 분야에 접근하는 한국사회 일각의 개발주의적 시각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작년 6월에는 ‘미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인공지능 등의 과학기술이 가져올 인류의 우울한 미래에 대해 잠깐 언급한 바 있다.

알파고-이세돌 바둑대결은 무엇보다 한 편의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벤트로 연출되고 받아들여졌다. 조만간에는 로봇과 인간의 피아노 배틀도 벌어진다고 한다. 인간 대 기계 대결 이벤트는 그것 자체가 가져오는 승부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 그리고 놀라운 실력을 갖추고 있는 기계에 대한 찬사와 경탄 등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사람들은 그 뛰어난 기계가 결국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안도하고 한편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 때문에 대결에서 설령 인간이 졌더라도 안도감과 우월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외려 새로운 어떤 로봇 기계를 기다리는 느낌까지 들게 된다. 이런 흥행의 가능성 때문에라도 인간-기계 능력대결 이벤트는 줄을 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벤트 차원에서 보는 것은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방해한다. 알파고-이세돌 대결은 매우 착잡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 사태이다. 이런 생각에서 알파고-이세돌 사태에 대한 인문학적 물음이 이어진다. 일테면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같은 대단히 철학적인 느낌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의미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물음은 아니다. 그리고 알파고-이세돌 사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은 언제 어디에서나 던져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고의 말

한편 일각에서는 다가오는 기계 우위의 시대에 대해 매우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은 필연적이며, 사람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고, 심지어는 인간을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등등. 즉, 지금까지 ‘인간중심-기계보조’의 틀이 깨지면서 ‘기계중심-인간보조’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날선 경고이다. 이와는 전혀 달리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의 기술에서 낙관적인 미래세계를 전망하는 축도 있다. 이들은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경제, 정치, 사회 등등의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긍정적 가능성을 설파한다.

어느 쪽의 입장이든 이들의 문제는 기술이 기술 내부의 공학적 논리에 따라 발전한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곧, 기술은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회의 개입과 역할은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기술발전은 과학자, 엔지니어, 기술정책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 서게 되면 사회는 다가오는 기술에 대해 수세적인,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기계들의 시대에 인간의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인간의 위상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인간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 하는 식의 질문이 나오게 되고 그런 내용의 논의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계시대의 기계에 대해 좁은 의미의 기술, 즉 공학적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면 거시적인 시각에서 기술을 인간사회의 일부로 배치하는 적극적 개입의 전략을 놓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기계시대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사회적 개입과 실천의 기획에 대한 논의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이다.

기술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명제는 고전적인 것이지만 기술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기술은 공학의 논리를 넘어 사회적인 힘의 관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정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기술 지형도는 기술공학 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개발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체제이다. 지금 인공지능, 기계학습, 로봇 등과 관련한 무수한 이야기 속에서 빠져있는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이런 관점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체제로 눈을 돌리게 한다. 즉 인공지능, 기계학습, 로봇 기술의 성격과 내용, 형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공학적 설계의 지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체제의 권력관계이다.

우선 지금의 정부/국가의 입장에 서보자.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 체제의 국가는 스스로를 싫어하는 기이한 조직이다. 국가는 스스로의 역할을 최소화하지 못해 안달한다. 공동체의 복리를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자본에 최대한의 자유를 주지 못해 안달한다. 둘째, 기업/자본의 입장에 서보자. 닦고 조이고 기름만 쳐주면(?) 하루 24시간, 일 주 7일, 일 년 365일, 아무 불평 없이, 노동조합? 임금인상 요구? 근로조건 향상 요구? 이런 것으로 기업/자본을 전혀 귀찮게, 불편하게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존재로서의 기계를 그들이 왜 사랑하지 않겠는가.

최상위 1%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을로 대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와 자본의 체제하에서 만들어질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하는 신기술들은 결국 갑의 이익, 즉 기존의 자본권력, 정치권력 집단의 이익을 위해 투철하게 복무하게 된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등의 국면에서 다가오는 긴급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체제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기계 같은 삶을 못 견딘다기보다 기계 같은 삶을 강요하는 체제를 더 못 견딘다. 기술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은 기술은 사회적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체제이다. 미래는 물론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미래를 만드는 인간을 제약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체제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패배할 경우 무서운 역사는 시작된다. 알파고-이세돌 사태를 포함하여 글머리에서 인용한 인간에게 봉사하기를 그만 두겠다는 로봇의 독립선언이나, 미쳐 돌아가는 인간들보다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기계에 의지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인간의 고백은 무서운 역사가 전개되는 서곡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인류 사회의 오랜 역사를 지탱해온 가장 큰 동력은 상식과 도덕에 기초한 인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희망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런 희망에 종지부를 찍고 전혀 다른 역사를 시작하는 의무를 지닌 채 태어난 악마의 사생아인지도 모르겠다. F. 후쿠야마 같은 사람이 언급한 역사의 종언은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더해지면서 이제야말로 그 본격적인 실현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체제가 승리할 경우 인간의 역사는 드디어 막을 내리고, Y. 하라리 교수 같은 사람이 말하는 ‘인간 이후의 역사’(post-human history)로 넘어갈 것이다. 새로운 역사의 장은 그러나 풍성한 세상이 아니라 종류별 인간들로 분류되고 그에 따라 취급되는 계급의 생지옥이 될 것이다. 그 모습을 우리는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잠시 들여다본 적이 있다. 영화는 이런 말로 막을 내린다.

더 나은 가능성을 찾아 이 황량한 대지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 1편 : AI로 대박치자고? 보기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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