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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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 추격자들 3화

김민식 프로필 사진 김민식 2014년 12월 15일

MBC 드라마국 PD / SF 덕후 겸 번역가 / 시트콤 애호가 겸 연출가 / 드라마 매니아 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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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의 메시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는 글을 보고 왔어요.”


사람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을 수도 있구나. 을기는 공지에 올린 그 마지막 문구가 참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외계인 침공설이나 퍼뜨리는 찌질한 덕후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그런데 그녀의 작고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말은 어쩜 그리 아름다운지. 레이아 공주가 자바에게 잡혀있는 모습을 본 제다이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녀와 함께라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귀찮긴 하겠지만, 지옥에 쳐들어가서 악마랑 한판 붙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막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완이는 짠돌이로 살아온 자신의 생활양식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돈을 더 벌 수 없을 때, 행복은 돈을 덜 쓰는데 있다. 남의 이목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과시성 소비만 줄여도 삶은 더 풍족해진다. 머리는 컷트 전문점에서 5천원에 최대한 짧게 자르고 베토벤 스타일이 될 때까지 몇 년이고 버티는 게 도완이 헤어스타일이다. 3년째 신고 있는 운동화에 색깔 다른 신발 끈을 묶는 게 최선의 패션 코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미소녀 캐릭터의 실사 버전인 것 같은 그녀의 모습 앞에, 도완이는 짠돌이로 살아온 자신의 과거를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어졌다.


불쑥 나타난 여자의 미모에 넋이 나간 두 친구가 자신의 삶과 캐릭터를 부정하는 순간에도, 무열이는 여전히 침착했다.


“네, 잘 찾아오셨습니다.”


을기가 벌떡 일어나 의자를 빼주었다.


“여기로 앉으시죠.”


도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무늘보 을기가 저렇게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가? 질세라 도완이도 벌떡 일어났다.


“커피! 커피, 뭐 드실래요? 제가 가서 주문할게요.”


지갑을 챙기는 도완을 보고 이번엔 을기가 깜짝 놀랐다. 도완이가 커피를 돈 주고 사는 날이 다 있구나! 늘 집에서 가져온 텀블러의 물로 때우고, 심지어 나갈 때 빈 텀블러에 커피숍 물을 채워가는 녀석인데.


“전 그냥 가져온 물 마실게요.”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텀블러를 꺼냈다.


“커피 안 드시나요?”


무열이의 물음에 그녀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네, 그냥 1회용품 사용도 줄일 겸, 돈도 아낄 겸.”


수줍은 그녀의 미소를 보자 도완이 가슴은 순간 터져버릴 것 같았다.


‘만세!’


마주앉은 여자의 눈이 똥그래졌다. 무열이와 을기도 도완이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가 도완이가 머리 위를 쳐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양팔을 들고 있었다. 팔을 슬그머니 내리고 앞에 놓인 자신의 텀블러를 가져와 물을 마셨다.


‘나도 지구 환경을 위해 텀블러 쓰는 남자라고요.’


무열이가 진지하게 물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개인적으로 전 UFO에 관심이 많아요. 심심할 땐, 인터넷에 UFO 목격담이나 사진을 찾아보는 게 취미죠. 그러다 여러분이 올린 4대강에서 UFO를 봤다는 글을 봤어요. 완전 신기했어요. 진짜 UFO를 본 사람을 만나는 게 오랜 꿈이었거든요.”


대부분의 남자는 당신 같은 미인을 만나는 게 평생의 꿈이지요. 도완이는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사는 찌질한 세 백수가 UFO를 보는 확률보다 더 희귀한 게 엘프를 현실에서 만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세 분이 보신 게 진짜 UFO가 맞을까요?”


“저는 그게 UFO라고 100퍼센트 확신합니다.”


무열이 녀석, 절세미녀 앞에서 저런 멘트를 심각한 표정으로 잘도 지껄이는구나. 난 눈만 마주쳐도 오금이 저리는데. 도완이는 새삼 무열이가 존경스러웠다.


“외계에서 비행체가 날아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나요? 태양계 내에는 다른 지적 생명체가 없는 것 같고.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안드로메다은하만 해도 2백만 광년 떨어져 있죠.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2백만 년이 걸린다는 거잖아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봐도 웜홀의 도움 없이는 항성간 우주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나오죠.”


“그렇죠. 그리고 그 웜홀 역시 수학적 계산으로 추측한 현상이지, 아직 관찰되거나 증명된 바는 없지요.”


무열이는 여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우주여행에 이 정도 관심을 보이는 여자는 처음인데? 역시 영화 ‘인터스텔라’ 효과인가?


‘아니면, 혹시?’


무열이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생각을 지그시 누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UFO는 Unidentified Flying Object의 줄임말로 미확인 비행물체라는 뜻입니다. 그게 외계인이 보낸 비행접시인지, 미래에서 온 타임머신인지, 지하세계에서 온 로봇 병기인지 알 수 없어요. 우리가 본 게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UFO인거죠.”


무열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우주에서 유일한 지적 생명체다.’ 라고 말하면 그것을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주의 끝까지 가서 샅샅이 뒤져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가 없는데, 사방으로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끝까지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죠. 그러므로 우리 말고도 이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진리에 가까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UFO는 없다.’ 고 말할 수도 없어요. 무한한 크기의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거거든요.”


도완이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를 앉혀놓고 왜 무열이는 UFO 얘기만 하고 있을까? 이름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동성동본은 아니겠지?)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제발 미성년자는 아니라고 말해줘요.) 집은 어디인가요? (지구 끝까지라도 모셔 드릴게요.) 혹 남자친구는 있나요? (제발, 제발, 제발, 없다고 해주세요.) 하지만 정작 도완은 말 한마디도 벙끗하지 못했다. 그래, 그 모든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이 순간, 그녀와 함께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일이지. 가만히 숨을 깊이 들이마셔 본다. 아, 공기 중에 프리지아 꽃향기가 난다. 그녀의 향기인가? 이런 향은 처음인 걸?


무열이 얘기에 흥미가 동한 여자는 몸을 살짝 앞으로 당겨 앉으며 가뜩이나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물었다.


“전 솔직히 UFO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궁금하진 않아요. 제가 궁금한 건 왜 왔을까 하는 것이죠.”


그 말에 을기가 살짝 놀랐다. 와우, 정말 예리한 질문이다. 그러게. 그들은 왜 그 먼 거리를 날아 지구에 왔을까? 영화에 나오듯이 지구를 침략해서 자원을 수탈하려고? 을기도 고개를 돌려 무열이를 쳐다봤다. 천하의 무열이라도 이번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외계인의 의도를 무슨 수로 알랴? 잠시 침묵이 흐르고, 무열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도 실은 그게 고민이었어요. 만약 그들이 먼 우주나 미래에서 왔다면, 항성간 여행이나 시간여행이 가능한 정도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이들인데, 그런 이들이 왜 굳이 미개한 지구를 찾아왔을까?”


그러고는 무열이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찬찬히 앞에 앉은 여자의 표정을 살피며 오히려 무언가 묻는 듯 했다. 천하의 무열이도 답을 못하는 때가 있구나. 잠시 시간을 끌던 무열이가 마치 무림비급을 펼쳐보이듯 입을 열었다.


“저는 그 답이 ‘사자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엑? 을기와 도완이가 경악한 표정으로 무열이를 쳐다봤다. ‘사자방’이라니, 설마? 그녀도 의외라는 듯 갸우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자방’이요?”


“네, 지난 정권의 3대 비리 의혹을 일컫는 말이죠. 4대강, 자원 외교, 그리고 방위 산업 비리.”


이제는 을기와 도완이도 무열이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이건 우리도 처음 듣는 소린데?


“전 4대강이 UFO의 수중 이동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수십조를 들여 강바닥을 판 이유는 UFO의 이동을 원활하게 돕기 위해서죠.”


“그럼 자원 외교는요?”


“자원외교는 UFO의 메시지를 나타냅니다.”


자원외교가 UFO의 메시지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지난 정권에서 벌인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다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수십조를 들여 해상 유전을 사고, 가스 광구를 샀지만, 다 깡통 차고 엄청난 손해를 보고 말았지요. 도대체 혈세를 왜 이런 식으로 낭비한 걸까요? 명색이 CEO 출신의 경제 전문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냥 무능하거나 무지한 탓 아냐? 을기와 도완이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무열이만 바라봤다.


“전 이게 다 철저하게 의도된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4조, 5조 하던 유전이나 가스 광구가 불과 몇 년 만에 10분의 1 이하로 가치가 폭락해버렸어요. 전 세계 각국으로 날아다니며 사 모은 에너지 기업, 해상 유전, 천연가스 광구, 이 모든 투자가 다 망했어요.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지구의 자원 고갈 속도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뜻입니다.”


무열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자원 외교는 UFO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화석 연료가 고갈되어 지구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 거죠.”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